흔히들 해적의 생활 하면 낭만을 떠올립니다. 끝없는 항해,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 다시 생각해 보세요! 해적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애를 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범죄자였고, 따라서 어떤 항구에도 정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훔칠 뿐이었죠! 그들은 늘 무기를 달고 살았습니다. 혹시, 한 손이 없어져도 이걸로 대체했을 정도니까요! – 히스토리 채널, 밀리터리 Q&A

1.해적의 역사

역사적 기록에 의해 밝혀진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인류가 해상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부터 나타났을 것 이라는 시각이 지배적 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나일강 하구에서 징세관이 탄 배를 습격한 이들이 기록상의 해적이며 이들의 역사는 고대 해양민족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이 해양민족들은 이집트를 습격하고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를 박살 냈으며, 세계 문명들을 좌지우지 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해적 소탕이라고 할 만한 일이 벌어진 것은 로마 공화정 시대로 해적들이 증가하여 지중해의 평화가 위협받자 로마 공화정은 당대의 명장 폼페이우스에게 파격적인 대권을 주고 해적을 소탕하게 했습니다. 폼페이우스는 적극적인 초토화 작전으로 법률상 정해진 기한을 단 몇달 쓰지도 않고서 해적을 몽땅 소탕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후 동방을 정복해 나갔으니 결국 해적들이 로마 제국의 확장에 기여한 셈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는 딱히 해적들이 번창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서로마 제국이 멸 하자, 중세에는 그 유명한 바이킹들이 서유럽을, 이슬람 해적들이 남유럽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시간이 흘러 본격적인 해적, 바다의 패권을 쥐고 악명을 떨친 대해적의 시대는 대항해시대와 맞물려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2. 악명을 떨친 역사속 해적들

 

바르바로사

하이르 앗 딘 (1478 – 1546.7.4)

칭 ‘바르바로사(붉은 수염)’ 라고 불리며 악명을 떨쳤던 알제리의 바르바리 해적이자 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으로 터기어 표기인 하이레딘 파샤 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습니다.

본명은 히지르. 아버지가 오스만 제국의 시파히 출신이었습니다. 형제들과 함께 은퇴 후 화물 운송업을 시작한 아버지를 돕다가 해적업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하이레딘은 1518년 이후 이탈리아와 스페인 해안을 2~30여 차례나 약탈했고 신성 동맹과 신성 로마 제국의 원정군까지 격파하면서 지중해의 패권을 확립하였으며, 이후 레판토 해전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지중해는 완전히 오스만 제국의 안방이나 다름없게 만든 장본인 이기도 합니다.

그는 해적으로서는 흔치않게 천수를 누렸으며,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이스탄불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

프랜시스 드레이크 (1543 ~ 1596. 1. 27.)

본업은 해적으로 플리머스에서 태어나 1566년과 67년에 존 호킨스와 함께 카리브해를 탐험했습니다. 대담하게도 스페인령 카디즈의 도시들을 공격하고, 스페인의 화물선을 습격해 그 재물을 약탈하고 그때마다 스페인 해군의 추적을 교묘하게 따돌림으로써 스페인에서는 죽일 놈 취급받았습니다.

또한 1570년에 자신의 원정대를 이끌고 스페인 대해로 항해해 다음 해까지 두 번을 습격해 약탈한 재물의 일부를 왕실에 바치는 사략 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1580년에는 세계일주를 성공하여 명성을 드높였다. 1581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일전을 앞두고 그를 왕궁으로 불러서 기사 작위를 내림과 동시에 영국 함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합니다.

그러나 실제 무적함대와의 전투에선 부사령관의 지위를 망각하고 대열을 이탈하여 멋대로 낙오한 스페인 함선을 공격하는 등 해적의 버릇을 못 버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기함인 골든 하인드호(Golden Hind, 황금사슴호)는 본래 해적선으로 노예무역, 식민, 새로운 항로의 개척, 해적 등으로 활동하다가 정부에 등용되어 영국 해군을 건설하는데 주역이 되었습니다. 또한 당대의 대표적인 갤리온으로 1973년에 드레이크의 고향인 데본에서 복원되어 영구 보존하고 있습니다.

반면 사략해적 드레이크는 1596년 열병으로 배 위에서 사망하게 되고, 그의 시신은 철제 관에 넣어진 후 수장되었습니다.

 

프랑수아 롤로노아

프랑수아 롤로노아 (1635 ~ 1667)

본명은 장다비드 노(Jean-David Nau) 프랑스 서부 레사블돌론(Les Sables-d’Olonne)에서 태어났습니다. 롤로네의 의미는 올론(Olonne)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며, 롤로노아(l’Olonnois)라고도 불립니다.

해적들 사이에서도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무자비함 때문에 에스파냐인들에게 ‘도리깨’라는 별명으로 불리었습니다.

롤로노아는 1655년에 토르투가의 프랑스 지사인 라 플레이스로부터 작은 배 한 척과 지휘권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포악함과 잔인함을 보였으나 어느날 유카탄 반도의 연안에서 폭풍을 만나 배가 파괴되고 대부분의 부하들은 목숨을 건졌지만 스페인의 경비병의 공격을 받아 부하들을 대부분 잃었으나 그는 온몸을 동료들의 피에 묻혀 시체더미에 몸을 숨겼다고 합니다.

목숨을 건진 그는 스페인 이주민으로 위장하여 캄페체로 잠입하여 마을 주민이 버케니어들의 죽음을 기뻐하는 사이 프랑스 노예들 사이에 숨어서 토르투가로 돌아갈 기회를 노렸으며 이후 그는 1667년에 그의 동료이자 해적인 미셸 르 바스코와 함께 8척의 소함대와 600명의 해적을 이끌고 베네수엘라 만의 지브롤터와 마라카이보를 약탈하였는데 마라카이보는 방비가 단단하여 육지 쪽을 공략하였으며 부하들과 함께 2주에 걸친 약탈 행위로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고 합니다.

토르투가로 귀환하여 수많은 보석, 비단, 은식기를 비롯한 약탈물들을 1/8로 분배하였으며 이들의 행위는 전 카리브해의 충격을 주어 단숨에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이후 700여 명의 부하들과 6척의 배를 이끌고 푸에르토 카베요를 공략하고 산 페드로로 이동하던 도중 정체불명의 스페인의 조직에게 기습을 받았으나 이들을 사로잡아 단검으로 가슴을 찌르고 심장을 도려내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부하들은 그를 배신하고 도망치기 시작하였으며 라스 패트라 섬을 항해하던 도중에 모래톱에 배가 걸려 좌초되자 새로운 배를 구하기 위해 떠났지만, 결국 니카라과 강변에서 원주민들의 공격으로 붙잡혀 몸이 찢겨져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헨리 모건

헨리 모건(1635~1688. 8. 25)

헨리 모건은 1635년 웨일스의 부농의 아들로 궨트의 뉴포트 근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찍이 인도로 넘어가 7년간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면서 열대섬의 해적, 잉글랜드의 해적들 이야기를 듣고 배우면서 1662년 잉글랜드 보병대에 입대하였으며 크리스토퍼 밍스의 배를 타고 자메이카를 약탈하여 그의 부대는 엄청난 전리품을 받게 됩니다.

29살이 되면서 밍스의 추천으로 해군성에서 사략선 선장으로 승격하여 나포 허가장을 하사받았으며 이후에 잭맨과 모리스가 이끄는 사략함대와 함께 중앙 아메리카를 약탈하고 다녀 에스파냐인들을 괴롭혔습니다.

모건은 누구보다도 전리품을 많이 노획하여 전리품이 많았으며 다른 사략선의 선장들보다 유명해지게 되었고 1668년 33살에는 자메이카의 지사로부터 잉글랜드의 사략함대를 지원해달라는 밀지를 받았으며 지사에게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자메이카의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받게 됩니다.

이 때 그는 자메이카 배후 내에 활동하는 모든 해적들의 지도자로 에드워드 맨스필드를 임명하였으며 잉글랜드의 지휘관이자 해적의 왕으로 에스파냐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몇 년뒤 에스파냐의 식민지인 파나마를 점령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쯤 잉글랜드와 에스파냐는 평화 협상이 벌어지고 있었고 모건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려지는데 모건은 그것을 무시하고 공격을 강행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1671년 5월 3일에 평화 협정을 어긴 죄로 체포되어 1672년 4월에 런던으로 송환되고 유죄가 선고되었지만 그는 캐러비안의 거물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며 1674년에 잉글랜드와 에스파냐가 다시 전쟁에 돌입하게 되자 왕에게 엄청난 보물을 지불하고 석방됩니다.

더불어 당시 왕인 찰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고 다시 자메이카의 지사로 임명되었으며 1688년 8월 25일에 52세의 나이로 사망하게됩니다.

후에 그를 평하길 싸우면 100% 이기는 것은 물론이고 해적질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심지어 왕 조차도 어쩌지 못할 인기를 손아귀에 넣은 뒤 고위직에 올라 천수까지 누리고 죽었다. 라고 전해집니다.이쯤 되면 해적 끝판왕 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해적이야기 재밌게 보셨나요?
다음 해적들에 관한 이야기는 실존했던 악명높은 해적 2탄으로 이어집니다!!

(해당 포스팅은 제가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했던 글을 재업로드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