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을 떨친 역사속 해적들

 존 라캄

존 라캄 (1682. 12. 21~1720. 11. 18)

존 라캄은 일반적으로 “캘리코 잭” 으로 더 유명한데 이런 별명이 붙은 이유는 존이 “캘리코” 천으로 만들어진 바지를 즐겨 입었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존 라캄은 유명한 여 해적 메리 리드와 앤 보니를 데리고 있었던 선장으로 유명합니다.

존 라캄은 원래 찰스 베인이라는 악명높은 해적의 선원으로 지냈다가, 1718년 11월 23일 선장인 베인이 프랑스 군함을 상대로 도망치자, 선원들로 부터 신뢰를 잃게 되고, 존 라캄은 그것을 계기로 선원들의 지지를 받아 선장이 되며, 자메이카를 돌며 여러 대의 소형 함선을 나포하였습니다.

그 이후 라캄은 유명한 여해적 앤 보니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돈이 바닥이 나기 시작하자 다시 해적질을 시작하여 서인도 제도에서 작은 상선들을 약탈하기 시작하는데, 거기에서 메리 리드를 만나게 되고, 보니를 설득하여 동승 하게 됩니다.

이후 라캄은 서인도제도를 따라 약탈을 계속하며 악명을 떨쳤지만, 니그릴 항 근처에 잠시 정박중이던 라캄은 기습을 받아 붙잡히게 되고 1720년 11월 16일 스페니시 타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며 존 라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됩니다.(교수형)

존 라캄이 교수대로 끌려 갈 때 앤 보니와 얽힌 일화가 있는데요, 그 당시 앤보니는 끌려가는 존 라캄에게 이렇게 소리 쳤다고 합니다.

“당신이 사내답게 싸웠더라면 개처럼 목이 매달리진 않았을 꺼야!!”

사뮤엘 벨라미

사뮤엘 “블랙 샘” 벨라미(1689. 2. 23~1717. 4. 27.)

사뮤엘 벨라미는 영국 출신으로 평생 1억 2000만 달러(2008년 화폐기준) 을 털어 포브스 선정  역대 해적 약탈금액 리스트 1위에 올라있습니다.

주로 활동했던 무대는 뉴 잉글랜드 연안 으로, 원래는 존 라캄 처럼 보통 선원으로 시작하였고 1700년 초에는 신대륙으로 가서 부유한 스폰서의 지원을 받아 에스파냐의 보물선을 찾기 위해 플로리다 남쪽을 탐색 하기도 했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빈털털이가 된 채로 결혼하여 영국의 켄트주 켄터베리 근처 마을에 가정을 꾸리지만 황금과 보석으로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아내가 떠나버리고 맙니다.

아내가 떠나버리자 바다로 돌아가 해적인 “벤자민 호르니골드”의 선원이 됐으며 , 그가 은퇴하자 선원들의 추대를 받아 선장이 되었고 “에드워드 티치” 를 추종하는 자들을 제외한 선원들을 이끌고 조타수인 “폴그레이브 윌리엄스”와 함께 1716년 서인도 제도의 식민지에서 악명높은 해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벨라미는 군함들을 교묘하게 피해다니며 50척이 넘는 에스파냐, 프랑스 함대를 약탈하고 그의 배는 상아, 수천 괴의 금, 은, 보석들로 가득 찼다고 하며 대담한 웅변술로 선원들은 주인처럼 따랐다고 합니다.

28세로 죽기 전까지 50척 이상의 배를 털었는데 그 중에서 벨라미가 올린 최고의 히트는 1717년 2월에 노예 700명, 각종 연장, 의류, 설탕, 금과 은 4.5톤을 싣고 있던 ‘위더(Whydah) 호’라는 300톤 급의 노예선 으로 이 배는 1715년 영국의 런던에서 건조된 것으로 서아프리카의 베냉으로 알려진 당시의 항구인 퀴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서인도 제도와 잉글랜드의 삼각무역을 담당한 범선이었습니다.

 

 

제가 게임에서 건져올린 위더 호…ㅋ

 

 

 

 

 

 

 

 

 

제가 플레이 하는 게임에서(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 직접 건져올린 역사유물선 위더 호 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황당하게도……이 위대한 해적은 1717년 4월 26일에 케이프 코드에서 거대한 폭풍을 만나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죽었습니다.

이후 1998년 7월에 바다 속에 가라앉은 위더호의 모습이 발견되었는데 어마어마한 황금, 귀금속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윌리엄 키드

윌리엄 키드(1655~1701)

통칭 캡틴 키드(Captain Kidd)로 불리며, 실제로 알려진 해적 중에 가장 불쌍한 해적입니다.

1655년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한 걸로 알려져 있는 키드는 원래 에스파냐 함대를 공격하던 함대의 선원으로 있다가 이후 프랑스로부터 잉글랜드의 식민지를 보호하는 사략선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이후 1689년에는 서인도 제도에 활동하던 사략함대 ” 블레스드 윌리엄 “의 지휘관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던중 선원들의 반란등의 이유로 사략함대 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해적생활을 청산하고 미망인과 결혼한후 상인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키드는 영국 정부로부터 사략 함대의 사령관을 제의받게 되고, 정부로 부터 지급받은 “어드벤쳐 갤리”로 해적 소탕에 나서게 됩니다.

그의 임무는 눈에 띄는 모든 프랑스 선박을 공격하고, 해적을 소탕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그를 후원하는 부유한 후원자들을 위해 값비싼 화물을 약탈해 오는 일이기도했습니다. 이에 선원들의 불만과 반란 조짐이 보이자 키드는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한 포병을 물통으로 내리쳐 죽이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의 불만에 못이긴 키드는 프랑스 깃발을 단 무굴 제국의 선박을 습격하여 화물 71만 파운드를 획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얼핏 이것은 불법같아 보이지만 그 선박이 프랑스 깃발을 달고 있었고, 프랑스군에서 발행한 통행권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선박을 공격한다는 임무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무굴 제국은 동인도 회사를 통해 키드의 이런 행동에 격렬하게 항의하고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키드에게 불리하게 영국 정계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키드를 지원하던 휘그당을 궁지로 몰기 위해 여러 명분을 들어 토리당이 키드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키드는 영국의 사략함대의 사령관에서 추악한 해적이라는 누명이 씌워지고 거액의 현상금이 내걸린 해적으로 전략하고 맙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결국 키드는 1701년 5월 23일 해적행위로 사형이 집행되 죽었습니다.
사형을 집행할 때 키드의 온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결박한 다음 교수형에 처했는데 참혹하게도 그의 시체는 해적행위에 대한 경고를 명분으로 템즈 이스터리 부두에 수년간 썩어 문드러져 해골이 될때까지 내걸렸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키드는 비호세력인 휘그당과 반대세력인 토리당의 권력다툼 그리고 후원자 벨몬트의 배신으로 참혹한 죽음을 맞은 비운의 해적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에드워드 티치

에드워드 티치(1680~1718. 11. 22)

에드워드 티치 , 통칭 “검은 수염” 으로 불리는 티치는 평생 1250만 달러를 약탈했고 이는 경제전문지 포브스 선정 해적 약탈금액 순위 10위에 해당합니다.

치렁치렁한 검은 수염을 길렀던 것으로 유명 하며, 많은 이들에게 묘사된 그의 외모는 이후 흉악한 해적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났으며 큰 키와 덩치를 가졌고 두 개의 검과 많은 권총을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협력하는 자에게는 용서를 베풀었지만 반항하는 자는 잔인하게 죽이고 배를 불태웠기 때문에 부하들은 그를 악마 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해적과 다르게 포로를 즐거움이나 재미로 고문하는 것이 아니라 사악한 이미지를 위한 것으로 독일어로는 “슈바르츠” 라 불렸으며 티치는 상대방이 싸움없이 항복하기를 원했고 반항없이 포기하면 귀중품과 항해도구만 가져갔으며 도망간다면 추적하여 밤이 되면 급습해 배를 태웠다고 합니다.
이렇듯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남기는데 주력했는데, 악마처럼 보이기 위해 적들 앞에서 불붙은 심지를 머리에 꽂고 등장하기도 했다합니다.

1717년 11월에 벤자민과 함께 26문의 함포가 탑재된 프랑스 국적의 노예 운반선인 콩코드를 나포하고 영국 왕 조지1세가 모든 해적들에게 해적행위를 중단 하라는 특사를 보내며 용서를 조건으로 했지만, 그는 벤자민과 달리 이를 거절하고 콩코드를 함포 40문으로 개조하여 기존의 선원 300명을 태우고 배의 이름을 “Queen Anne’s Revenge” 라고 지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앤 여왕의 복수 호로 익숙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앤 여왕의 복수 호는 보포르 해협에서 모래톱에 걸려 좌초되고 말았는데, 선원들은 배에 두고 본인만 전리품과 보석들을 실고 떠나면서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고 합니다..(해적 선장 클라스)

이후 검은수염은 존 라캄과 함께 해적생활을 하기도했으며,
죽음에 관해서는 아직 역사적으로 의견이 분분한 해적이기도 합니다.

앤 보니 와 메리 리드

앤 보니

메리 리드는 1690년, 영국 플리머스 출신이며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남장을 하고 자랐다. 그러다 집에서 도망친 뒤 한 병사를 만났는데 그가 죽자 서인도제도로 가는 배에 선원이 되었고, 항해도중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바로 존 라캄의 윌리엄 호였다. 당시의 환경에 따라(대다수 해적들은 상선 선원출신으로 해적에게 나포되고 다시 그 배의 선원이 된다) 메리 리드도 해적이 됩니다.

앤 보니와 메리 리드가 해적질을 할 때는 남장을 하고 평소에는 여자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는 설, 항상 남장을 하고 있었다는 설,  해군에게 붙잡히고 나서야 여자로 밝혀졌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1720년 말 윌리엄 호가 자메이카 서쪽 끝에 정박했을 때 바넷 선장이 이끄는 해군의 기습을 받았습니다. 9명의 선원들은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고 메리 리드와 앤 보니는 배의 닻줄을 끊고 달아나려 했지만, 해군에게 따라잡혔고 결국 해군에게 붙잡혀(메리 리드와 앤 보니만 끝까지 저항했다고 합니다.) 재판 받기 위해 포트 로열로 압송됐습니다.

 

 

 

 

 

 

 

 

메리 리드

앤 보니와 메리 리드는 법정에서 ‘매우 방탕하고 불경한 말을 쏟아 내었고, 못 하는 짓이 없어 보였다’ 고 합니다. 11명의 해적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선고 받았지만, 두 여해적은 임신했다는게 밝혀져 집행이 유예되었습니다. 다른 해적들은 1721년 11월에 교수형을 당했는데, 형이 집행 되기 전에 앤 보니가 존 라캄에게 ‘당신이 사내답게 싸웠더라면 개처럼 목이 매달리진 않았을 꺼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교수형을 당한 해적들의 시체는 하루 반동안 조수에 씻긴 뒤, 타르를 칠한 쇠창살에 몸통을 끼운 뒤 높이 매달아서 전시했습니다.

집행이 유예된 두여자 해적중
메리 리드는 1721년에 열병으로 옥사했고 옥스포드 인명사전에 따르면 앤 보니는 아버지에 의해 석방되어 라캄의 둘째아이를 낳았던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가 그 지역 남자와 결혼하고 점잖은 부인으로 살다가 1782년에 향년 80세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마치며…

대항해시대에 악명을 떨치며 해군, 상인, 그리고 죄없는 시민들까지 공포에 몰아 넣었던 해적들..
그들은 범죄자 였고, 살아 남기 위해 끊임없이 애썼으며,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수 없는 존재였고, 오로지 훔치고 약탈 할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그러한 항해는 세계사에 남을 유의미한 모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부작으로 준비한 실존 해적에 관한이야기.. 약간은 미흡하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탄탄한 자료 준비를 통해 더욱 재밌고 유익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포스팅은 제가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했던 글을 재업로드 한 것입니다.)